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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수다방

공황장애

지금은 나의 공황장애에 대한 경험을 말하려고합니다.

 

나는 사실 아주 오랜 동안 '공황장애'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전철도 기차도 타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참 길었습니다.

처음엔 나 자신이 공황장애인 것을 모르고 전철을 탔다가

단 한 정거장도 가지 못하고 마치 미친사람처럼 전철 안을 앞 칸에서 제일 뒷 칸까지 계속 걸었습니다.

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릴 때 까지.......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나마 나의 뇌가 생각한 것은 견디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전철이 역에 도착할 때마다 내려서 호흡하고 가느라 90분이면 가는 집을 5시간 동안 갔습니다.

버티고 갈 수 있는 것은 단지 한 정거장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상황이 폐쇄공포증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검색을 해서 알아보니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약물로 치료하기 싫어서 오랜 세월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며 지냈습니다.

나의 심리 상태는 약을 복용하는 것도 매우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이 약을 먹고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심리적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음식을 먹고 잘 못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까지 엄습을 했으니까요.

말로는 표현하기 정말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약은 복용할 수 조차도 없었습니다.

 

2000년 봄, 사업실패로 충격을 받고 맞이한 공황장애였으니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 죽음의 공포가 느닷없이 밀려 왔고 나는 살기 위해서 거리를 뛰었습니다.

그렇게 뛰다가 약국에 들어가서 조급한 상태로 신경안정제를 약사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을 요구할 뿐 내주지 않습니다.

위급 상황을 얘기하니 그제서야 약사는 빠르게 신경안정제를 내주었고

나는 처음 신경안정제를 복용 후 10시간이 넘도록 잠들었다 깨어났습니다.

일어나 보니 한 여배우가 곁에서 울고 있더군요.

그렇게 나는 공황장애와의 사투를 시작 했습니다.

 

자가용을 운전하고 가다가 터널을 맞이하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터널이 있다고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하는 순간 부터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온 몸이 후들거렸습니다.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터널을 지나기 위해서 과속을 합니다.

때로 1킬로가 넘는 터널을 지나고 나면 체중이 3킬로는 빠지는 기분으로 고통이 컸습니다.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서 드라이브하다 보면 터널을 지나는 것을 알지 못해서

갑자기 터널을 맞이할 때면 당황부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에는 가는 길 지도를 검색해서 긴 터널을 지날 수 밖에 없는 길이라면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우선 터널을 맞이하면 그 터널의 길이가 길던, 짧던

어떻게 들어가지, 어떻게 통과하지, 통과하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는 이루말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야하니 통과하고 나면 스스로 거 봐 살아서 나왔잖아 난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의 다짐을 줄 곳 해왔습니다.

 

심장불안 증을 해소해 주는 환으로 된 약을 복용하며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먼 곳을 갈 때는 반드시 물을 갖고 갔습니다.

터널을 맞이하면 물을 마셨고, 지나는 동안 또 물을 마시며 갔습니다.

물이 곁에 있고 물을 마시면 신경이 좀 달라지는 기분을 느꼈고 통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는 불안 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면서 신경을 분산키며 갔습니다.

전화로 대화를 하면서 내가 지금 터널 안에 있다는 것을 잊으려 노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한 번 지난 터널은 그 터널의 길이를 알기에 터널을 지나는 그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두려웠지만 그래도 조금의 두려움을 억제하며 통과를 했습니다.

한 번의 통과 경험은 그 다음 통과하는데 가장 큰 약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항공기 이용은 더 이상 나에게 꿈 같은 일이 되었습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해외에 사는 동생을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나의 극심한 공황장애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어딘가를 가자고 요구할 때 나는 갈 수가 없었기에 다른 핑계로 슬쩍 피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나의 그런 태도를 오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도 가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어머니 제가 공화장애 때문에 지금 어머니에게 갈 수가 없어요, 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요, 라는 핑계로 잘 말씀드리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미국에서 영구 귀국한 선배님을 배웅하고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속초에 동행했다가 긴 터널이 너무 많아 운전 중 터널 안에서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가득한 상태로 다년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까지 나는 스스로 많이 이겨내며 극복을 했다고 판단 했는데 그 분과 속초를 동행하면서 극심한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터널에 대한 공포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선배를 도와 주려다가 다시 찾아온 공황장애로 인해 다시는 그 선배를 만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는 나에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그 선배의 잘못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배를 보면 기억이 떠올라서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만나지 않습니다.

 

좁은 땅에 터널이 너무 많아요!

 

지금은 그래도 극복을 해서 잘 다닙니다만 아직도 남아있어서 늘 차에 물을 가지고 다닙니다.

물론 심장불안증을 해소하는 환으로 된 약도 지니고 다닙니다.

완전하게 치유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물론 병원 치료를 통해서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이겨내며 극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그 증상은 배로 나타나기 때문에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마셔야할 때는 다음날을 생각하고 정말 적당량만 마십니다.

 

어느 때인가 극복 후에 증상 정도를 시험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봤습니다.

혹시나 해서 알콜로 신경을 중화 시키려고 팩으로 된 소주를 사 가지고 기차에 승차를 했지만 다행이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목적지 까지 도착을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후로는 이겨내기 위해서 3번 정도 더 기차를 일부러 타면서 스스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서울역 목적지에 도착할 때면 '거 봐 살았잖아, 안 죽었잖아' 스스로 자신과의 대화를 하면서 해냈다는 자신 감을 얻을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에 정릉터널, 홍지문 터널을 지나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끔직합니다.

정체 되는 시간에 터널을 지날 때면 거의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소리치며 터널을 통과했으니까요.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터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을 각오를 하며 통과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한 번 통과하니 그 다음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통과하는 동안 불안 증상은 계속 되었지만 그래도 통과는 했으니까요.

 

아직도 긴 터널은 불안 하기 매 한가지지만 그래도 이젠 어지간한 터널은 잘 통과하고 있답니다.

공황장애가 우울증으로 변할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마치 해탈한 사람 마냥 이겨내고 있답니다.  

 

주변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편안하게 대해 주세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합니다.

우울증으로 바뀌면 정말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먼길을 갈 때는 함께 동행 해 주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정말 안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고, 정신적으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황장애는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힘들고, 대형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한 번들어가면 빨리 나올 수 없다는 중압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정차 하기 전까지 세울 수도 없고 문이 열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한 공포를 느낍니다. 승용차를 타고 터널에 진입하는 것도 극도의 불안으로 힘드니 전철을 타는 것, 기차를 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자신의 시선 앞에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건물 밖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은 극도로 심해질 수 밖에 없답니다. 

그런 곳을 누군가 함께 동행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도록 도와줘야합니다.

그렇게 한 번 도와주면 그 다음은 통과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되니까요.

공황장애는 암담함으로 얻어지는 심리적 정신 장애이라서 앞이 보이지 않거나, 당장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는 곳이라면 극도로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답니다.

 

저의 경험 상으로 공황장애는 그 어떤 신체적 장애보다도 힘든 장애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며, 공황장애를 앓는 분들은 주변에 자신의 상태를 반드시 알려야합니다.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만병의 근원으로부터 해방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